AI를 시작한 이유
사실 나는 AI를 처음에 별로 안 좋아했다.
뭔가 과장된 느낌? “세상이 바뀐다”, “일자리가 없어진다”, “곧 인간을 능가한다” 같은 말들이 너무 많이 들려서 오히려 거부감이 생겼달까. 근거 없는 공포 마케팅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그런데 지금은 매일 쓴다. 진료 보기 전에도, 논문 볼 때도, 심지어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어떻게 생각이 바뀌었냐고? 그걸 설명하려면 조금 먼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인류가 지식을 얻어온 방식의 역사부터.
1.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시절 — 지식을 얻으려면 목숨을 걸어야 했다
기원전 3세기,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세계 최대의 도서관이 세워졌다.
당시 기준으로 이건 그냥 건물이 아니었다. 인류가 가진 모든 지식의 총합이 그 안에 있었다. 파피루스 두루마리 70만 권. 그 안에 수학, 철학, 의학, 천문학, 문학이 전부 담겨 있었다.
근데 그 지식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
일단 알렉산드리아까지 가야 한다. 오늘날 그리스에서 알렉산드리아까지는 비행기로 두 시간이 채 안 걸린다. 하지만 당시엔 배를 타고 몇 달. 중간에 폭풍이라도 만나면 그냥 죽는다.
겨우 도착해서 도서관 안으로 들어가도, 원하는 두루마리를 찾는 것 자체가 일이었다. 요즘처럼 검색창에 뭐 치면 나오는 게 아니니까. 어느 선반, 몇 번째 두루마리인지 직접 기억하거나 사서에게 물어봐야 했다.
그리고 읽었다. 필요한 내용이 나오면? 직접 베꼈다. 복사기도, 사진도, 스캔도 없으니까. 손으로 한 글자씩.
그렇게 공부하는 데 드는 시간을 생각해보면… 당시 학자들이 평생 알 수 있는 지식의 양이 지금 우리가 하루에 접하는 정보량보다 훨씬 적었을 거다.
아, 참고로 그 위대한 도서관은 나중에 불에 탔다. 인류의 지식 상당 부분이 그냥 사라진 거다. 백업도 없이.
2. 구텐베르크 인쇄술 — “이제 책을 살 수 있어요” (근데 여전히 비쌈)
1440년대,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인쇄기를 발명했다.
이전까지 책은 전부 수작업으로 만들었다. 수도원 수도사들이 하루 종일 앉아서 한 글자씩 양피지에 써내려가는 방식. 성경 한 권 만드는 데 수개월이 걸렸고, 가격은 당연히 어마어마했다. 농부 한 명이 평생 일해도 성경 한 권 사기 힘든 수준.
그러니 글을 아는 사람도 귀했다. 글을 읽을 줄 알고, 책을 가진 사람은 그 자체로 엄청난 권력이었다.
구텐베르크 인쇄기가 나오고 나서, 유럽 전역의 책 가격이 급격히 떨어졌다. 50년 사이에 책 생산량이 수백 배 늘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게 뭘 의미하냐면, 지식이 드디어 “특권층의 전유물”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거다. 물론 아직도 비쌌다. 여전히 아무나 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방향이 바뀌었다. 지식이 퍼지기 시작했다.
이게 곧 종교개혁으로 이어지고, 과학혁명으로 이어지고, 계몽주의로 이어진다. 구텐베르크 인쇄기 하나가 유럽 역사 전체를 바꿔버린 셈이다.
3. 공공 도서관 — “이제 책을 공짜로 빌릴 수 있어요”
19세기 들어서 공공 도서관이 생겨났다.
개념이 단순하다. 세금으로 책을 사서, 누구나 무료로 빌려볼 수 있게 하자. 지금은 당연한 얘기지만, 당시엔 꽤 혁명적인 발상이었다.
덕분에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돈이 없어도 지식에 접근할 수 있게 됐다. Carnegie가 미국 전역에 도서관을 지어댔고, 영국에서도 Public Libraries Act가 생겼다.
그런데 도서관을 쓰려면 여전히 뭔가를 해야 했다.
도서관까지 가야 한다. 거기서 카드 목록(요즘으로 치면 도서 검색 시스템인데, 그냥 종이 카드 수천 장이 서랍에 꽂혀 있는 거다)을 뒤져야 한다. 원하는 책을 찾아서 직접 들고 와야 한다. 대출 기간 내에 읽어야 한다. 반납 안 하면 연체료 낸다.
지금 생각하면 꽤 번거롭지만, 당시엔 이게 엄청난 발전이었다. 어쨌든 지식에 닿는 문턱이 또 한 번 낮아진 거니까.
4.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 “이제 집에서 찾아볼 수 있어요” (근데 32권짜리)
20세기 중반, 가정집에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32권짜리 전집. 책꽂이 하나를 통째로 차지하는 그거.
이게 꽤 큰 의미가 있었다. 도서관까지 안 가도 된다. 집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회적으로 “지식인의 집”을 상징하는 물건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중산층 가정에서는 꽤 무리해서 사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근데 한계가 명확했다. 내용이 업데이트가 안 된다. 일단 인쇄되면 그냥 그 상태로 굳어버린다. 10년 전에 산 백과사전으로 최신 과학 동향을 알 수는 없는 노릇이지.
그리고 32권에 담긴 정보가 방대하다고는 해도, 세상 모든 지식을 담을 수는 없었다. 정말 궁금한 거, 정말 세부적인 거는 결국 도서관에 가야 했다.
5. 인터넷 — “이제 집에서 전 세계 도서관을 쓸 수 있어요”
1990년대 말, 인터넷이 일반 가정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속도가 너무 느렸다. 모뎀 연결하면 특유의 “삐삑-치치치-” 소리가 나고, 이미지 하나 뜨는 데 몇 분씩 걸렸다. 그리고 인터넷 하는 동안 전화를 쓸 수가 없었다.
그래도 가능성은 엄청났다. 세상 어딘가에 있는 정보에 집에서 접근할 수 있다는 것. 이건 진짜 패러다임이 바뀐 거였다.
구글이 나오고 나서 그 속도가 더 빨라졌다. 1998년에 창업한 구글은 검색을 완전히 바꿔놨다. “찾는다”는 행위 자체의 개념이 달라진 거다.
이전에는 야후 같은 서비스에서 디렉토리를 뒤져야 했다. 인터넷판 두루마리 뒤지기랄까. 근데 구글은 그냥 키워드 치면 관련 페이지를 순위 매겨서 보여줬다.
그리고 위키피디아가 2001년에 생겼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이 수십 명의 전문가들이 수십 년에 걸쳐 만든 것이라면, 위키피디아는 전 세계 누구나 기여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처음엔 신뢰성 논란이 많았지만, 지금은 솔직히 초기 조사에는 위키피디아만한 게 없다.
이 시점에서 지식 접근의 마찰은 아주 많이 줄어들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검색창에 치면 된다.
6. 스마트폰 — “이제 화장실에서도 공부할 수 있어요”
2007년, 아이폰이 나왔다.
뭐가 달라졌냐고? 앉아야 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전까지는 “인터넷을 쓴다”는 건 컴퓨터 앞에 앉는 행위였다. 출근 전, 퇴근 후, 주말. 정해진 시간, 정해진 장소.
스마트폰은 그걸 없애버렸다. 버스 안에서도, 밥 먹으면서도, 화장실에서도. 언제 어디서나 궁금한 게 생기면 바로 찾아볼 수 있게 됐다.
지식까지 닿는 물리적 마찰이 사실상 0에 가까워진 거다.
그리고 유튜브. 글로 읽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인 학습 방식이 생겼다. 전 세계 최고 전문가의 강의를 무료로, 언제든, 반복해서 볼 수 있게 됐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시절 학자들이 봤다면 기절했을 수준이다.
7.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남았다
여기서 잠깐 멈추고 싶다.
지식에 닿는 속도는 수천 년에 걸쳐 이렇게나 빨라졌다. 몇 달 → 며칠 → 몇 시간 → 몇 분 → 몇 초.
근데 이상하지 않은가?
정보를 찾는 시간은 줄었는데, 읽고 이해하는 시간은 별로 안 줄었다.
논문 한 편 읽는 데 걸리는 시간이 스마트폰 있다고 줄어드나? 아니다. 복잡한 개념을 이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구글 있다고 줄어드나? 아니다.
정보에 닿는 속도는 비약적으로 빨라졌지만, 인간 두뇌의 처리 속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의사 입장에서 이게 특히 크게 느껴진다.
매년 전 세계에서 수백만 편의 의학 논문이 발표된다. 새로운 치료법, 새로운 약물, 새로운 가이드라인. 이걸 다 따라가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내가 전공 외 분야에 대해 가진 지식은 의대를 졸업하고 인턴, 레지던트를 하면서 쌓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 이후로 업데이트된 내용들을 전부 파악하고 있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그리고 진료실에서 하루에 수십 명의 환자를 보면서 각각의 케이스에 맞는 최선의 판단을 내려야 한다. 그 판단 하나하나가 정말 최선인지, 솔직히 확신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8. 그래서 ChatGPT를 처음 써봤을 때
2022년 말, ChatGPT가 공개됐다.
주변에서 난리가 났다. “엄청나다”, “일자리 없어진다”, “이제 의사도 필요없다”. 솔직히 저런 말들 때문에 오히려 시큰둥했다. 또 과장이겠지 싶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한번 써봤다.
환자 케이스 하나를 넣어봤다. 어떤 검사를 해야 할지, 어떤 감별진단을 생각해야 할지. 아무 기대 없이 입력했는데…
틀리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미처 생각 못 한 포인트를 짚어줬다.
다음날 영어 논문 하나를 던져봤다. 요약해달라고 했다. 핵심 내용이 깔끔하게 정리됐다. 물론 세부적인 수치는 직접 확인해야 했지만, 20분 걸릴 작업이 3분으로 줄었다.
그때 느낌이 있었다. 뭔가 진짜 다르다는.
구텐베르크 인쇄기가 나왔을 때 책 읽을 줄 아는 수도사가 느낀 감정이 이런 거였을까? 인터넷이 처음 나왔을 때 그걸 먼저 써본 사람이 느낀 감정이 이런 거였을까?
지식에 닿는 속도가 빨라진 게 아니었다. 지식을 처리하는 속도까지 빨라진 거였다.
수천 년 동안 좁혀왔던 마찰이, 이제 마지막 단계까지 줄어들고 있었다.
9. 왜 나는 AI를 시작했나
솔직하게 말하면, 처음에는 두려움이 없었던 건 아니다.
“의사도 필요없어질 거다”라는 말이 아예 신경 안 쓰인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AI 진단이 틀렸을 때의 책임은 누가 지나, 환자와의 관계는 어떻게 되나, 의료 행위의 본질은 뭔가, 이런 질문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근데 어느 시점에 생각이 바뀌었다.
구텐베르크 인쇄기가 나왔을 때 수도사들이 “이제 책이 대량생산되면 우리 필요없어지겠네”라고 걱정했을 수도 있다. 근데 그게 맞았나? 인쇄술은 지식을 민주화했고,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이 글을 읽고 쓰는 시대가 왔다.
구글이 나왔을 때 “이제 백과사전 편집자들 필요없겠네”라고 했을 수도 있다. 근데 오히려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아졌다.
AI가 의사를 대체할 거냐, 아니냐의 논쟁보다 AI를 잘 쓰는 의사가 되는 게 더 중요한 거 아닐까 싶었다.
파도가 오면 파도를 탈 줄 아는 사람이 살아남는다. 파도를 막으려는 사람도, 파도를 무시하는 사람도 결국 휩쓸린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써보니까 재미있었다.
내가 몰랐던 걸 배우는 게 좋다. 새로운 도구를 익히는 게 좋다. AI는 그 자체로 꽤 흥미로운 도구였다. 쓸수록 더 잘 쓰게 되고, 잘 쓸수록 더 많은 걸 할 수 있게 됐다.
마치며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서 두루마리를 베끼던 학자부터, 스마트폰으로 유튜브 강의를 보는 지금까지.
인류는 계속해서 지식에 닿는 마찰을 줄여왔다. 그 방향은 변한 적이 없다. 언제나 더 빠르게, 더 쉽게, 더 많은 사람이.
AI는 그 흐름의 연장선이다. 다만 이번엔 스케일이 다르다. 정보를 찾는 것을 넘어, 정보를 처리하고 합성하고 활용하는 단계까지 왔다.
이 블로그의 에세이 섹션은 그 흐름 안에서 내가 직접 겪은 것들을 기록하는 공간이 될 거다. 대단한 연구가 아니라, 의사로서 AI를 실제로 써보면서 좋았던 것, 실망했던 것, 예상 못 했던 것들을 솔직하게.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불타지 않았다면 인류가 지금보다 얼마나 앞서 있을지 모른다. 그 상상이 항상 아쉬웠는데, 지금 이 시대에 태어난 건 확실히 운이 좋은 것 같다.